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믿는 가전제품은 무엇일까?

2022. 9. 1. 15:43공부/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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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서 흔히 접할수 있는 근거 없는 과학 이야기를 택하여 비판하는 내용의 글을 써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독특한 특성이 있다. 의사들이 건강을 위해 술과 담배를 줄이라는 말은 아무도 주의 깊게 듣고 지키지 않지만, 문지방을 밟지 않는다든가 누워있는 사람을 뛰어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는 등의 말은 매우 잘 지키는 편이다. 이와 관련해서 외국인들에게 문제가 나온 적이 있다. 2016년도 5월 미국의 유력 언론 뉴욕타임스에 사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로“Q.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믿는 가전제품은 무엇일까요? (a) 전자레인지 (b) 믹서기 (c) 선풍기 (d) 휴대용 CD 플레이어가 나온 적이 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답이 무엇인지 자신 있게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답은 바로 ‘(c)선풍기이다.

이와 관련해 재밌는 일례로 미국에서 주한미군이 한국군과 같이 잘 때 선풍기가 틀어져 있으면 한국군이 불안해하기에 배려해서 취침 시에는 선풍기를 꺼주라는 공문의 지침이 실제로 내려왔었다. 어떻게 보면 웃긴 이야기지만 미군들 처지에서는 다소 불편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은 왜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는 얼토당토않은 속설을 믿게 됐는지 그 관련 근거들을 과학적으로 알아보자.

 

우선 밀폐된 공간에서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라는 말은 한국 사람들의 오래된 믿음이다. 우리 중 대부분은 조금 억울하긴 하지만 어렸을 적에 우리가 선풍기를 켜고 자고 있으면 부모님은 놀라거나 혼을 내며 선풍기를 잘 때 켜면 안 된다고 알려주셔서 열대야에 땀을 뻘뻘 흘리며 자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부모님께 이야기를 들었고 부모님은 이런 이야기를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께 들었을 것인데 그럼 결국 이러한 이야기의 시작점은 어디일까?

미신의 정확한 기원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나 이러한 미신이 확산하는 데는 한국 뉴스 미디어가 한몫 하였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러한 보도가 있었는데 그 시작은 1927731일 자 중외일보에 보도된 선풍기병-신기하다는 전기 부채의 해, 잘못하면 생명 위험이란 제목의 기사다. 기사에서는 산소 부족, 호흡곤란, 체온감소에 관해 다루고 있는데 이는 현대의 선풍기 미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이러한 선풍기 미신이 퍼지게 된 이유는 한국 뉴스 미디어가 이론들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근거들을 지속해서 보도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에서 보도된 선풍기 미신을 믿게 된 나름의 과학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틀고 자면 산소가 부족해져서 질식해 죽는다.’ 2.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켜면 선풍기 바람에 호흡이 가팔라져 결국 죽는다.’ 3.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켜면 저체온증으로 심장마비가 와 죽는다.’ 하지만 이는 모두 과학적으로 타당성을 갖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내용이다. 위의 내용에 대해 과학적으로 반박을 해보자.

첫 번째 근거인 창문을 닫고 선풍기를 틀고 자면 산소가 부족해져서 질식해 죽는다라는 주장에 관해 확인해보자. 우선 선풍기란 물리적으로 공기를 움직이는 장치이다. 그렇기에 공기의 화학성분을 바꾸는 장치가 아니다. 따라서 선풍기를 켠다고 해도 공기 중에 산소 농도가 변하는 일은 발생할 수가 없다. 오히려 반대로 밀폐된 공간 안에서 선풍기를 켜놓으면 공기에 대류가 발생해 산소 농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 근거인 호흡곤란은 그럴싸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실제로 태풍과도 같은 매우 강한 바람이 불면 실제로 숨이 차기도 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서 태풍이 분다고 호흡곤란이 와 쓰러지는 사람은 없다. 위와 같은 논리대로라면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도 전부 호흡곤란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저체온증은 선풍기 미신을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근거다. 실제로 선풍기 바람을 쐬면 신체 주위의 공기 대류가 원활해지거나, 땀이 기화하면서 우리 몸의 에너지를 빼앗아 가기에 우리의 몸은 어느 정도 시원해진다고 느껴 저체온증에 걸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체온증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내장과 근육 등의 온도를 의미하는 심부 체온이 8~10°c 정도 낮아져야만 발생하는데 사실상 선풍기의 바람으로는 피부 온도는 변화시킬 순 있어도 심부 체온을 8~10°c 정도 이상 낮추긴 어렵다.

 

물론 처음 선풍기 미신이 보도된 20년대는 과학적 지식이 보편화된 시기가 아니었기에 보도에 한계가 있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50년 후 선풍기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후에도 기존의 지식이 뉴스로 전파되었다는 점이 문제이다. 사망 사건에 관해서 다른 사망요인이 있을 수도 있었지만, 사망요인을 엉뚱한 선풍기로 돌려 쉽게 찾은 것이다. 심지어 의사들조차도 실험한 적이 없기에 그냥 그렇게 믿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는 과학적 사고방식이 결여된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렇기에 우리는 목소리 큰 사람의 말을 단지 믿는 것이 아니라 뉴스에서 주어지는 정보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독자들은 여름날 밤에 무서워서 땀 뻘뻘 흘리지 말고 마음 편히 시원하게 잘 수 있으면 한다.

 

참고문헌

 

뉴욕타임스-2016523일 자 뉴스기사

https://www.mk.co.kr/news/it/view/2008/07/450596/

https://www.lawtimes.co.kr/Legal-News/Legal-News-View?serial=54385

http://www.lawissue.co.kr/view.php?ud=986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7231804205&code=940100

https://web.archive.org/web/20070110052746/http://joongangdaily.joins.com/200409/22/200409222123324579900091009101.html

 

어록.

이덕환(서강대 화학·과학 커뮤니케이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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