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22. 16:45ㆍ공부/교양
저는 다수의 생존을 위해서 소수의 목숨을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입니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소수를 희생해서 다수를 구하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남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이들을 살리는 쪽이 옳다는 논리는 포장은 훌륭하나 결국에는 희생시키지 않아도 되는 이들을 희생시킨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희생을 달가워하는 이는 없고 이상론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더 많은 이들을 살리기 위해 더 적은 이를 희생시킨다는 건, 결국 사람 목숨을 저울질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 목숨에는 위아래가 없기에 한명 한명이 모두 소중하다면 한 명의 죽음과 천명의 죽음을 비교하게 되지만 이는 틀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목숨과 1000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곡식 중에 선택할 수 있습니까? 만약 1000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곡식을 선택했다면 목숨이 곡식보다 못하게 됩니다. 애초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고,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하게 되면, 결국 세상은 모든 것의 가치를 나누게 됩니다. 그럼 평가하지 말아야 할 것을 평가하게 되고, 깎아내리지 말아야 할 것을 깍아내리게 됩니다. 처음에는 한 명의 목숨이 될지도 모르지만, 전쟁으로 예시를 들면 그다음에는 적진에 포위된 아군의 목숨, 그다음엔 전방에서 싸우다 쓰러진 부상자의 목숨! 그다음엔 동맹의 목숨! 그다음엔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어린이와 노약자, 그다음은 민간인까지! 저울질하여 더 가치 없는 것을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이 세상 모든 것을 내버릴 수 있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지 전 모르겠습니다. 버리고 버리고 버려서는 안될 것마저 모두 버리게 된다면 이 세상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요. 생명을 소중하기에 다수를 살리자는 의견은 이렇게나 모순된 것입니다. 자신을 현명하다 여기면 모든 것에 잣대를 가져다 댑니다. 하지만 정말로 현명한 이는 평가를 하지 않는 법입니다. 머리로만 생각하지 않는 것, 이와 리를 따지지 않고 제 마음이 가는 길을 따르는 것을 협의라고 부릅니다. 명석함만을 믿고 가치를 판단하는 순간 우리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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